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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공사까지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땅을 건드리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지장물 처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순서를 잘못 잡으면 큰일 납니다. 이설보다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위치 파악입니다. 지장물이 어디 묻혀 있는지도 모른 채로 가설공사부터 들어가면, 정작 안전하려고 세우는 가설울타리나 진출입로 공사 자체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6년 현장 생활 동안 가장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도, 땅을 파보기 전까지는 100%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거든요.
지장물 위치 파악, 가설공사 전부터 끝내야 한다
착공 전에 통신사, 한전, 상수도사업본부 같은 관련 기관에 지장물 도면을 요청해서 받아보는 게 첫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 도면이라는 게 오래된 현장일수록 실제 매설 위치와 다른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다고 전 구간을 다 사전 터파기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부지가 워낙 넓은 데다, 구간마다 다 파보는 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저희 현장에서도 구간마다 사전 터파기를 하면서 확인했는데도, 가설울타리 강관말뚝을 박다가 한전선이나 통신선을 건드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도면과 사전 터파기만으로는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설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아예 각 통신사와 한전에 미리 연락해서, 강관말뚝을 박을 구간을 짚어주고 지장물 탐지를 요청합니다. 처음엔 이런 것도 해주나 싶었는데, 요청하면 실제로 나와서 탐지해줍니다. 이 절차 하나를 추가한 뒤로는 가설울타리 시공 중 지장물을 건드리는 사고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위치를 안 다음에야 비로소 이설이든 회피든 다음 판단을 할 수 있는 거지, 위치도 모르고 이설 계획부터 세우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는 걸 그 이후로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통신선 이설, 협의 상대가 한둘이 아니다
통신선은 한 회사만 매설돼 있는 게 아니라, 통신사별로 여러 회사의 선로가 같은 구간에 얽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설 작업을 하려면 해당 구간에 선로를 가진 통신사마다 개별적으로 협의를 해야 하는데, 회사마다 일정과 절차가 다 다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저는 통신선 이설 협의를 할 때, 한 회사와 협의가 끝났다고 바로 착공하지 않고 관련된 모든 통신사의 협의가 완료됐는지 재차 확인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 회사 협의를 놓친 채로 굴착을 시작했다가, 뒤늦게 다른 통신사 선로가 발견돼서 공정 전체가 지연된 경우를 실제로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전력선 이설, 정전 계획까지 함께 세워야 한다
전력선은 통신선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지장물입니다. 고압선인 경우 감전 사고로 이어지면 곧바로 중대재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설 작업 전에 한전과 정전 계획을 반드시 협의해야 합니다. 정전 일정도 무작정 우리 공사 편의대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근 주민이나 사업장의 전력 사용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해서 한전이 승인하는 시기에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전력선 이설은 통신선보다 협의 기간을 훨씬 여유 있게 잡아야 합니다. 저는 보통 착공 예정일보다 최소 한두 달 전에는 한전 쪽에 이설 협의를 요청해두는 편입니다. 그리고 실제 이설 작업 당일에는 반드시 정전 여부를 재확인하고, 검전기로 통전 상태를 직접 확인한 뒤에야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수관 이설, 단수보다 통수 이후가 더 무섭다
상수관은 통신선이나 전력선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이설 작업을 하려면 해당 구간의 단수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데, 단수 시간과 함께 수압관리도 신경 써야 합니다. 단수를 시작하면 계속 흐르던 물이 그대로 멈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근 관로에 수압 변화가 급격히 생기면 다른 구간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작업 전후로 수압을 서서히 조절하는 절차를 꼭 거칩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진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단수 기간 자체보다, 공사가 끝나고 다시 통수했을 때가 더 문제입니다. 물이 멈춰있던 동안 기존 상수관 안쪽에 있던 녹이나 찌꺼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물살에 섞여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돗물이 뻘겋게 나오거나 이물질이 섞여 나오면, 그걸 본 주민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놀라고 민원이 엄청나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저는 통수 직후에는 소화전이나 배수 설비를 통해 일정 시간 물을 흘려보내면서 관 내부를 충분히 씻어낸 뒤에야 정상 급수로 전환하도록 챙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수 예정일과 함께, 초기에 일시적으로 물이 탁해질 수 있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미리 안내해두는 것도 민원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지장물 처리, 결국은 순서와 협의 싸움
지장물 실무를 오래 해보면서 느낀 건, 기술적인 난이도보다 위치 파악과 협의 순서를 얼마나 꼼꼼히 관리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겁니다. 위치도 모른 채 이설 계획부터 세우면 결국 현장에서 사고로 되돌아옵니다. 통신선, 전력선, 상수관이 같은 구간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걸 먼저 처리하느냐에 따라 다른 지장물 작업 일정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습니다. 저는 지장물별로 담당 기관, 탐지·협의 진행 상황, 예정 이설 일자를 한눈에 정리해두고, 매주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하면서 관리합니다. 지장물 처리가 끝나야 본격적인 토공사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시간을 얼마나 단축하느냐가 사실상 전체 공정표의 출발점을 결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지장물 처리까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품질관리계획 수립을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