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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사에서 절토 작업을 하다 보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사면입니다. 흙을 파내는 작업 자체는 백호우가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설계고까지 절토를 진행하면서 사면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단순히 장비 작업량만 볼 수 없습니다. 26년 넘게 산업단지와 택지조성 현장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사면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복구공사도 문제지만, 장비와 근로자의 안전, 공정 지연까지 한꺼번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절토를 시작하기 전, 먼저 확인하는 것
절토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선 설계도면을 통해 절토고와 사면 경사, 소단 위치 등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 나가 기존 지형과 도면을 비교해 봅니다. 특히 택지조성공사는 공사 구간이 넓기 때문에 도면만 보고 작업을 시작하면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면 작업에서 제가 항상 제일 먼저 하는 게 도면과 실제 지형 사이의 차이를 측량으로 확인하는 일입니다. 특히 설계상 산마루측구(사면 상부에 빗물을 미리 차단하는 배수시설)를 터파기해서 설치하는 경우, 사면 제일 위쪽 끝선이 그 터파기한 만큼 도면상 위치보다 더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도면에는 표시가 잘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면만 보고 사면 끝선을 잡으면 실제와 어긋나는 일이 흔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중요하게 봤던 것은 기존 지반의 높이와 설계고, 절토 예정 높이, 사면 경사, 토사와 암반의 분포, 기존 배수 상태, 지하수나 용수 발생 가능성, 사면 상부의 구조물이나 도로 위치 이런 항목들입니다. 사면 위쪽에 기존 도로나 민가, 구조물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신중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절토를 진행하면서 지반이 예상보다 크게 움직이면 단순히 현장 내부 문제가 아니라 주변 시설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토 시작 전에 측량을 통해 현재 지형을 다시 확인하고, 설계도면과 실제 현장 조건이 다른 부분은 작업 전에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면은 한 번에 끝까지 깎지 않는다
높이가 있는 절토 구간을 작업할 때는 처음부터 설계 사면까지 한 번에 밀어버리는 방식보다 단계적으로 절토를 진행하게 됩니다. 절토가 진행되면서 토질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사면 형상을 다시 검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토사 사면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비가 오거나 지하수가 나오면 상태가 갑자기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절토 직후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며칠 동안 비가 내린 뒤 사면 일부가 흘러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절토 작업을 할 때는 백호우 작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면에 균열이 생기는지, 흙 일부가 흘러내리는지, 물이 새어나오는지, 사면 아래쪽이 불룩하게 밀려 나오는지, 기존과 다른 방향으로 지반이 움직이는지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현장에서는 공정이 급하면 장비를 멈추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사면 문제는 초기에 작은 이상으로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작업 방법을 다시 검토하는 것이 결국 공정 관리에도 도움이 됩니다.
비가 오기 전에 배수부터 생각해야 한다
토공사에서 사면 안전과 가장 밀접한 것이 물입니다. 절토를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용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지하수위가 높은 지역이나 지층 사이로 물이 흐르는 구간은 절토가 진행되면서 갑자기 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이 계속 흘러내리면 토사가 물러지고, 사면의 안정성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국가건설기준센터(KCSC)의 비탈면 배수시설 설계기준(KDS 11 70 25)을 보면, 깎기비탈면은 높이 20m마다 소단배수구를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사면 상부에서 빗물이 그대로 사면을 타고 내려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사면에서 발생하는 물은 적절한 배수시설을 통해 처리해야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것은 사면 자체를 아무리 잘 시공해도 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단양 매포농공단지에서 근무할 때는 그 지역 특성이 또 달랐습니다. 그쪽 지대가 동굴이 많은 지역이라, 사면 작업을 하다 보면 암반 사이사이에 작은 동굴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동굴을 타고 물이 새어 나올 수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런 배수를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으면 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사면이 붕괴되는 걸 실제로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에서는 일반적인 사면 배수공법 대신 다른 공법으로 시공을 바꿔서 처리한 적이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 현장에 나가 보면 평소에는 없던 물길이 생겨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물길을 그대로 방치하면 흙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면 일부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기 전에는 특히 배수로와 집수시설 상태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낙석방지와 계측관리, 눈에 안 보이는 위험을 잡는다
절토 사면에서는 낙석 위험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특히 비가 온 뒤에는 사면 표면의 흙이나 암석이 느슨해지면서 낙석 위험이 눈에 띄게 높아집니다. 그래서 사면 높이나 지반 조건에 따라 낙석방지망이나 낙석방지울타리 같은 시설을 설치해서, 혹시라도 떨어지는 돌이나 흙이 아래쪽 작업 구간이나 도로로 직접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둡니다. 그리고 사면이 무너지기 전에는 대부분 미세한 변형이 먼저 나타나는데, 이 변형은 육안으로는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규모가 있는 절토 사면에는 계측기를 설치해서 사면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관찰합니다. 지중경사계로 지반 내부의 수평 변위를 측정하거나, 지표변위말뚝으로 사면 표면의 이동량을 확인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계측 데이터에서 변위량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그건 사면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사면 상부보다 아래쪽만 보면 안 되는 이유
절토 사면을 관리할 때 흔히 작업 중인 아래쪽만 보게 되는데, 실제로는 사면 상부도 같이 확인해야 합니다. 사면 상부에 균열이 발생하거나 지반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아래쪽에서는 아직 특별한 변화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절토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면 전체를 한 번에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현장을 돌 때 장비 작업 구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경우 사면 상부까지 같이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사면 상부의 균열, 빗물이나 지하수의 유입, 기존 구조물의 이상 여부, 낙석이나 토사 유실 가능성, 사면 위쪽 적치물이나 장비 위치는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면 상부에 무거운 장비나 토사를 가까이 적치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사면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작업 공간을 계획할 때부터 위치를 고려해야 합니다.
절토 중 암반이 나오면 작업 방식도 달라진다
택지조성공사에서는 처음에는 토사로 예상했던 구간에서 암반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암반이 나오면 단순히 백호우로 계속 파내는 것이 아니라 암반의 상태와 절리 방향 등을 확인하고, 필요한 공법과 장비를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발파 작업이 필요한 경우에는 주변 환경과 구조물, 안전거리 등 추가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아집니다. 청주 동남택지 현장에서 발파암 사면 작업을 할 때 겪은 것도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처음엔 백호우에 브레이커를 달아서 사면을 다듬으려고 했는데, 이 방식으로는 사면경사를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맞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발파작업 전에 천공기로 설계된 사면경사에 맞춰 미리 천공을 해두는 방식으로 바꿨더니, 발파 후 남는 사면 모양이 훨씬 깔끔하게 유지됐습니다. 이 방식을 쓴 뒤로는 발파암 구간 사면 정리에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도 줄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설계 당시 조사한 지반 상태와 실제 시공 중 확인되는 지반 상태가 항상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절토를 진행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지질 조건이 나타나면 현장 판단만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설계와 시공 조건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면 안전은 측량과 관찰에서 시작된다
토공사 사면 안전관리를 생각하면 거창한 안전시설부터 떠올릴 수 있지만, 현장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현재 지형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측량과 작업 중 발생하는 변화를 놓치지 않는 관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입 시절 현장소장님께서 토목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측량과 양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때는 왜 측량과 양수가 그렇게 중요한지 정확하게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토공사를 하다 보니 결국 토목공사는 땅의 높이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물을 제대로 관리하는 일에서 많은 문제가 시작되고 해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토 사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계도면에 표시된 사면을 그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지반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계속 확인하고, 비가 오기 전과 온 뒤의 상태를 살피며,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바로 작업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흙막이 가시설을 더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